
베란다에서 채소를 길러 보고 싶어 화분과 흙부터 사 오는 분이 많다. 그런데 막상 심고 나면 잎이 노래지고 웃자라서 한 달을 못 넘기는 경우가 흔하다. 원인은 대개 식물이 아니라 자리다. 베란다 텃밭은 화분을 고르기 전에 우리 집 베란다에 빛이 몇 시간이나 들어오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빛이 드는 시간을 사흘만 재 보자
아침, 점심, 오후 세 번 베란다에 나가 바닥에 직사광선이 닿는 범위를 휴대폰으로 찍어 두면 된다. 남향이라도 앞 동에 가려 실제로는 두세 시간만 해가 드는 집이 많다. 하루 네 시간 이상이면 상추, 깻잎, 청경채 같은 잎채소가 무난하고, 여섯 시간 이상이면 방울토마토나 고추도 해 볼 만하다. 두 시간 안팎이면 욕심을 줄여 부추나 쪽파, 허브 몇 가지로 시작하는 편이 실패가 적다.
흙보다 배수가 먼저다
베란다는 바람이 적고 습기가 잘 안 빠진다. 그래서 정원용 흙을 그대로 쓰면 아래쪽이 늘 젖어 뿌리가 썩는다. 시판 상토에 펄라이트를 두세 줌 섞고, 화분 바닥에는 반드시 구멍이 있는 것을 고른다. 받침 접시에 물이 고여 있으면 바로 버려야 한다. 물은 겉흙이 손가락 한 마디 깊이까지 말랐을 때 한 번에 흠뻑 주는 것이 자주 조금씩 주는 것보다 낫다.
첫 작물은 한 종류만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심으면 물 주는 주기가 제각각이라 관리가 어렵다. 처음 한 달은 상추 한 종류만 두 화분 정도 기르면서 우리 집 베란다에서 흙이 마르는 속도를 익히는 것이 좋다. 상추는 심은 지 삼 주면 바깥 잎부터 따 먹을 수 있어 재미도 빨리 온다. 그 감각이 생기면 다음 달에 종류를 하나씩 늘려 가면 된다.
처음 살 것과 나중에 살 것
처음에는 화분 두 개, 상토 한 봉지, 물뿌리개, 작은 모종삽이면 된다. 흙 온도계나 조명, 자동 급수기는 한 계절을 보내고 정말 필요하다고 느낄 때 산다. 도구가 많으면 관리할 것이 늘어 오히려 부담이 된다. 모종은 집 근처 화원에서 한두 포기씩 사면 씨앗보다 실패가 적고, 화원 주인에게 우리 집 베란다 방향을 말하면 맞는 것을 골라 준다.
화분 크기는 지름 이십 센티미터 안팎이 잎채소 두세 포기에 알맞다. 스티로폼 상자도 바닥에 구멍만 뚫으면 훌륭한 화분이 되고, 보온이 잘돼 가을과 봄에 특히 유리하다.
흙은 한 번 쓰고 버리지 않아도 된다. 한 계절이 끝나면 뿌리를 털어 내고 햇볕에 며칠 말린 뒤 새 상토를 삼분의 일쯤 섞어 다시 쓴다. 이렇게 하면 흙값이 크게 줄고, 베란다에 흙 봉지가 쌓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 베란다 상추 두 화분에서 나오는 양은 일주일에 쌈 한두 번 정도다. 장을 안 봐도 될 만큼은 아니다. 대신 아침에 잎을 따서 바로 먹는 맛과, 매일 조금씩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가 베란다 텃밭의 진짜 수확이다. 그 재미가 붙으면 화분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작게 시작해서 자리와 물 주기를 몸에 익히는 것이 베란다 텃밭의 전부다. 화분은 그다음이다.